치과의사신문 + 덴탈위키 공동기획 「치과경영 기획연재」 환자는 변했다. 치과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④
질문의 단위를 바꾼다
지난 세 번의 글은 누구를 환자로 만나는지, 그 환자와 얼마나 오래 관계를 이어가는지, 진료실에서 무엇을 이해시키는지를 물었다. 모두 진료실 안을 향한 질문이었다. 필요한 질문이다.
그러나 어느 한 진료실만의 것은 아니다. 환자가 왜 떠나고 왜 머무는지 읽어 내는 일, 우리 치과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를 어디로 이어줄지 찾는 일을 여러 진료실이 각자 풀고 있다.
환자의 변화가 한 치과의 대응만으로 끝나지 않는 문제라면, 질문의 단위도 넓어져야 한다.
같은 문제를 여러 진료실이 반복해서 풀고 있다면, 그 해법까지 각자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가.
치과 밖에서 답을 찾기 시작한 사례
이 질문을 공식 논의에 올린 사례가 일본에 있다. 일본치과의학회는 2019년부터 인구 구조 변화 속에서 치과의료를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 검토해 왔고, 2025년 3월 위원회 답신 「지역지원형 다기능 치과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내놓았다. 시행된 제도가 아니라 학회의 제안이다.
답신의 출발점은 하나의 단골 치과가 복합적인 요구를 모두 받아 내기는 어렵다는 인식이다. 지역마다 수요와 공급이 다르니 먼저 지역 자원의 기능을 파악하고, 그 위에서 두 방향을 제시한다.
여러 기능을 갖춘 치과가 단골 치과를 뒤에서 지원하는 방식 그리고 소규모 치과들이 연계해 전체로서 기능을 보완하는 방식이다. 기능을 한곳에 모으든 여러 곳을 잇든, 목표는 지역 안에서 필요한 진료가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답신이 소개한 도쿄 도시마구 구강보건센터에서는 지역 치과의사들이 함께 진료하면서 ‘내 치과의 환자’에서 ‘서로 도와 함께 보는 지역의 환자’로 인식이 옮겨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주목할 것은 어떤 제도를 만들었느냐가 아니다. 어디까지를 한 치과의 책임으로 보고, 어디부터를 연결의 문제로 보기 시작했느냐이다.
일본의 답을 그대로 가져올 필 요는 없다. 의료제도도, 지역의 조건도 다르다. 가져올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먼저 환자가 왜 떠나고 왜 머무는지의 문제부터 보자.
한 치과 안의 기준이 담당자가 바뀌어도 작동하기 위한 것이라면, 공동의 기준은 치과가 달라져도 같은 문제를 처음부터 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앞의 것이 한 조직의 기억이라면, 뒤의 것은 한 직역의 기억이다. 그런데 한 치과의 경험은 곧바로 여러 치과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떠난 이유는 한 치과에서 보이지 않는다
지방 소도시의 여러 치과에서 되풀이되는 장면을 보았다. 비슷한 진료를 받은 환자들이 치과를 떠났지만, 떠난 이유는 저마다 달랐다. 가격 때문이라는 환자도, 설명이 부족했다는 환자도, 원장의 응대나 치료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환자도 있었다. 환자에게 직접 듣기도 했고, 상담 과정에서 알게 된 경우도 많았다.
필자가 지켜본 바로는 가격 때문에 떠난 환자가 여러 곳을 돌고 돌아 원래 치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옮겨 간 곳에서 가격도 진료도 만족스러웠던 환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가격은 떠나는 이유가 될 수는 있었지만, 가격만으로 머물 곳이 정해지지는 않았다. 진료까지 만족스러운 곳이어야 환자는 자리를 잡았다.
이 흐름은 어느 한 치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환자가 돌아온 치과는 돌아왔다는 사실만 알고, 환자가 돌아오지 않은 치과는 떠났다는 사실만 안다. 여러 치과의 경험을 나란히 놓아야 보이는 흐름이다.
한 치과 안에서는 자기 자리에서 본 결과로 원인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 짐작은 대응을 정한다. 떠난 이유를 가격으로만 읽은 치과는 가격으로 대응하게 된다. 그러나 필자가 본 흐름대로라면, 그 대응은 환자를 머물게 하는 이유와 어긋나 있을 수 있다.
같은 것을 보아야 반복이 보인다
반복되는 물음이 공동의 기준으로 정리되는 길이 낯선 것은 아니다.
대한치과보존학회는 2014년부터 2022년까지 보존·근관치료 분야의 임상 주제에 대해 여러 차례 학회의 입장을 정리해 공개했다. 아말감 수복처럼 같은 주제에 대해 2014년에 이어 2019년에 다시 입장을 낸 경우도 있다. 임상 판단에 관한 물음이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면, 달라진 환자를 만나는 과정에서 되풀이되는 물음도 같은 길을 밟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공동의 기준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갱신되는가.
출발은 같은 것을 보는 일이다. 떠난 환자를 두고 한 치과는 ‘상담 실패’라고 적고, 다른 치과는 ‘가격 문제’, 또 다른 치과는 ‘환자 변심’이라고 적는다면 경험은 쌓여도 서로 비교할 수 없다. 환자가 무엇 때문에 떠났다고 말했는지, 그것을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는지, 이후 돌아왔는지를 같은 항목으로 남겨야 여러 치과의 경험을 겹쳐 볼 수 있다. 공동의 기준은 여기서 시작한다. 모든 치과가 똑같이 행동하라는 매뉴얼이 아니라, 같은 상황에서 무엇을 확인하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공통의 틀이다.
이때 비교하는 것은 환자 개인이 아니라 유형과 빈도다. 의료법 제21조는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환자에 관한 기록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여러 치과가 경험을 모으는 일은 누가 떠났는지가 아니라, 어떤 이유로 얼마나 자주 떠났는지를 나누는 일이어야 한다.
비교하려면 먼저 꺼내야 한다. 학회와 지역 치과의사회 모임, 스터디 모임처럼 치과의사와 치과 종사자가 만나는 자리는 이미 있다. 그 자리에서 잘된 해법만 나누면 반복은 보이지 않는다. 막혔던 지점과 풀리지 않은 물음을 같은 틀로 꺼낼 때 여러 치과의 어려움이 겹쳐 보이고, 비로소 사건이 반복으로 드러난다.
반복이 확인되었다고 해법까지 확인된 것은 아니다.
‘우리 치과에서는 됐다’와 ‘어디서나 된다’는 다른 말이다. 한 곳에서 통한 요령이 다른 규모와 다른 지역의 치과에서도 통하는지 확인되어야 요령은 기준이 된다.
기준은 함께 만들고 함께 고친다
임상의 질문에는 학회의 입장문이라는 길이 있다. 환자가 왜 떠나고 왜 머무는지에 대한 물음도 여러 치과에서 반복되는 한, 개별 치과의 짐작에 맡겨 둘 일이 아니다. 임상 학회가 그래 왔듯 관리와 경영을 연구하는 학계가 이 물음을 정리한다면, 한 치과의 요령이 여러 치과의 기준으로 넘어가는 통로가 생긴다.
그러나 틀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우리 치과에서 떠난 환자가 말한 이유를 같은 말로 적어 두는 것만으로도, 무엇이 반복인지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준을 받는 치과에도 몫이 있다.
우리 진료실의 조건에서 써 보고, 맞지 않는 곳이 있으면 다시 알리는 것이다. 기준은 완성품이 아니다. 환자는 계속 달라지고, 현장에서 쓰이는 동안 어긋나는 곳이 드러난다. 기준을 받기만 하는 치과가 아니라 고치는 데 참여하는 치과가 있을 때 기준은 갱신되고, 현장의 노력은 흩어지지 않고 쌓인다.
공통의 틀은 사람을 기르는 기준으로도 이어진다. 청력과 인지가 달라진 고령 환자에게 맞춰 안내하는 일, 외국인 환자가 진료 과정을 따라올 수 있도록 돕는 일, 청소년 환자가 자기 진료의 결정에 참여하도록 돕는 일을 치과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가르친다면, 그 요령은 그 치과 안에 머문다. 이런 일을 맡을 사람을 같은 기준으로 길러 낸다면, 그 요령은 치과의 문을 넘어 쓰인다.
좋은 기준은 현장의 판단을 대신하지 않는다. 같은 판단을 매번 처음부터 만들지 않게 한다.
하지 않는 진료를 정하는 것도 경영이다
그러나 기준만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 우리 치과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다. 기준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알려 주지만, 누가 무엇을 맡을지는 알려 주지 않는다.
같은 기준을 공유해도 그것을 수행할 역량은 치과마다 다르다. 인력과 전문성, 장비와 시설이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을 공통으로 갖출 것인가와 무엇을 각자 맡을 것인가는 다른 문제다.
그래서 한 치과가 먼저 할 일은 자기 역할의 경계를 밝혀 두는 것이다. 하는 진료와 하지 않는 진료, 조건에 따라 하는 진료를 나눠 적고 데스크와 진료실이 함께 보게 한다. 경계가 원장의 머릿속에만 있지 않고 진료실 전체에 분명해야, 그 밖의 요구가 나타났을 때 누구든 알아차릴 수 있다. 경계가 흐리면 역할 밖의 요구는 무리한 대응이 되거나, 대응하지 못한 채 지나간다.
하지 않는 진료를 정하는 것은 거절이 아니라 경영 판단이다. 필자가 근무했던 한 치과에는 매복 사랑니 발치를 잘하는 원장이 있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다른 치과의 의뢰까지 늘었지만, 그만큼 기존 환자의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나머지 진료에도 차질이 생겼다. 그 치과는 매복 사랑니 발치를 줄이고, 필요한 환자는 구강외과 진료가 가능한 다른 치과로 연결했다. 한 치과가 모든 진료를 잘할 필요도, 잘하는 진료를 모두 붙들고 있을 필요도 없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 정해야, 인력 배치와 장비·시설 투자를 어디에 모을지가 정해진다. 집중할 영역을 정하는 일은 하드웨어만의 문제도 아니다. 어떤 기록을 남기고, 누구와 어떤 정보를 주고받으며 이어져 있는가, 그리고 그 일을 맡을 사람을 어떻게 길러 내는가 하는 소프트웨어도 한 치과의 역량이다.
경계를 정하는 일은 하지 않을 진료를 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어느 치과에나 다른 치과보다 잘하는 진료, 곧 강점이 있다. 감당할 수 있는 강점을 지역의 다른 치과가 알 때, 강점은 지역 안에서 맡는 역할이 된다. 한 치과는 누군가에게 환자를 보내는 곳이면서, 동시에 누군가가 환자를 보내오는 곳이 된다. 연결 정보가 모이는 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는 우리 치과가 무엇을 받을 수 있는지 알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환자는 연결되어도 진료는 연결되지 않는다
경계 밖의 요구를 알아차렸다면, 다음은 그 요구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아는 일이다. 막연히 더 큰 곳으로 보내는 것은 연결이 아니다. 하지 않는 진료마다 지역에서 어디가 그 진료를 하는지, 그곳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옆에 적어 두어야 맞는 곳으로 이을 수 있다. 상대의 기능을 모르는 연결은 환자에게 다음 곳을 알아서 찾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필자가 근무했던 치과에서 턱관절 장애 환자와 삼차신경통이 의심되는 환자를 대학병원에 의뢰한 적이 있다. 두 환자는 이후 다시 치과로 돌아와 치료를 이어 갔다. 대학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는 치과에도 전해졌지만, 병원을 통해서가 아니라 환자가 와서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환자를 보냈다고 진료까지 건너간 것은 아니다. 환자와 함께 정보도 옮겨 가야 한다. 보낼 때는 왜 의뢰하는지, 지금까지 무엇을 확인하고 어떤 치료를 했는지, 무엇을 더 확인해 주기를 바라는지가 건너가야 한다. 치료를 마친 뒤에는 무엇을 확인했고 어떤 치료를 했는지, 이후 어떤 관리가 필요한지가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는 연결되어도 진료는 연결되지 않는다. 필자가 겪은 두 환자의 경우, 돌아와야 할 진료의 내용은 환자의 기억과 말에 실려 돌아왔다.
돌아온 것도, 치료 내용이 전해진 것도 결국 환자에게 달려 있었던 셈이다. 환자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치과는 그 뒤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보낸 환자가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는 치과의 의뢰를 망설이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의뢰를 망설이는 동안 역할 밖의 요구는 연결되지 못하고, 그 부담은 환자에게 돌아간다.
돌아오는 길은 설계할 수 있다
2025년 보도된 보건복지부 연구용역 보고서 「치의료협력체계 구축을 위한 의뢰·회송 운영(안) 마련 연구」는 2023년 한 해 동안 4개 국립대 치과병원에 의뢰된 1만 5,911건을 분석했다. 의뢰 환자의 92%가 1차 치과의원의 서면 의뢰서를 들고 왔지만, 치료를 마친 뒤 1차 치과의원으로 회송된 비율은 5.8%에 그쳤다. 보내는 길은 열려 있었지만, 돌아오는 길은 좁았다. 보고서는 그 원인으로 치료를 마친 환자를 1차 치과의원으로 되돌려 보내는 제도가 없다는 점을 짚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을 제도에만 맡길 일은 아니다. 한 치과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의료법 제21조의2는 다른 의료기관으로부터 진료기록의 사본이나 진료경과에 대한 소견을 보내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그 요청에 응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 구조는 의뢰하는 치과가 활용할 수 있다. 의뢰할 때 치료 뒤의 경과와 소견을 회신해 달라고 요청하고, 환자에게도 그 취지를 알려 두는 것만으로도 돌아오는 길을 환자의 기억에만 맡기지 않을 수 있다.
회신을 요청하는 의뢰는 환자를 내보내는 일이 아니라, 환자가 돌아올 자리를 미리 잡아 두는 일이다. 의뢰가 곧 환자를 잃는 일이라는 등식은 여기서 깨질 수 있다.
한 치과의 이 실천은 지역의 방식이 될 수 있다. 지역 치과의사회는 지역 안의 치과들이 모이는 자리다. 그 자리에서 어느 치과가 어떤 진료를 어디까지 하는지를 모으고 회신 요청까지 담는 같은 서식을 마련한다면, 지역의 연결은 개별 치과의 수소문에 기대지 않게 된다.
단골 치과는 연결이 시작되는 곳이자 환자가 돌아오는 곳이다. 의뢰와 회송은 환자가 옮겨 다니는 경로가 아니라 진료가 이어지는 경로여야 한다.
이 연결은 결국 지역 안에서 작동한다. 어디에 어떤 전문기관이 있는지 아는 것만으로 연결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환자가 실제로 갈 수 있는 거리인지, 그곳에서 필요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지, 치료를 마친 뒤 일상의 관리를 맡던 치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지를 함께 따져야 한다. 자원이 가까이 모인 곳과 멀리 흩어진 곳, 특정 진료를 하는 곳이 있는 지역과 없는 지역은 연결의 거리도 경로도 다르다. 지역은 환자를 다시 나누는 기준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역할과 자원을 실제로 이어 보는 단위다. 같은 기준을 갖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은 다르다.
설계할 것은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기준은 공유하면서 역할은 나누고 필요한 순간에는 이어질 수 있는 구조다.
치과는 준비됐는가
환자는 바뀌었다. 그렇다면 치과는 준비됐는가.
준비라고 하면 흔히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갖추고, 더 많이 대응하는 것을 떠올린다. 개별 치과의 노력은 여전히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준비를 각 치과가 갖춘 역량의 총량으로만 잰다면, 반복되는 요구 앞에서 모든 치과는 같은 무게를 저마다 따로 지게 된다. 노력은 늘어나도 경험은 쌓이지 않는다.
그래서 준비를 재는 잣대부터 달라져야 한다. 무엇을 갖추었는가는 역량을 보여줄 뿐이다. 떠난 환자의 이유가 읽히는지, 보낸 환자의 경과가 돌아오는지, 우리 치과의 강점이 지역 안에서 맡은 역할이 되었는지가 준비의 성과다. 준비는 진료실 안에서 시작되지만, 치과와 치과 사이에서 완성된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대응이 아니다. 반복되는 대응을 기준과 연결로 바꾸는 일이다.
치과의사신문 '치과 비즈니스 리뷰'에 연재된 글입니다. 원문 보기